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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The Stage] 오늘의 걸음이 내일의 인식으로 이어진다면
연극 ‘워킹 홀리데이(walking holiday)’ 이경성 연출
 
황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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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워킹 홀리데이(walking holiday)’의 이경성 연출을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뉴스컬처)     © 사진=두산아트센터

어떤 대상을 알아가기 시작할 때 우리가 본능적으로 먼저 취하는 행위는 감각하기다. 만지고, 듣고, 느끼는 것을 통해, 우리는 대상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온 몸에 담으려 한다. 사유가 감각을 열리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감각이 사유를 더 정확하게 열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경성 연출의 이번 작품, 연극 ‘워킹 홀리데이(walking holiday)’는 감각을 통해 사유를 확장하는 시도였다. 그가 택한 감각은 ‘걷기’ 였다. 사유할 땅을 먼저 ‘걸음’으로 감각했고, 그 감각으로부터 파생하는 여러 사유들을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택한 사유의 대상은,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남과 북으로 나뉜 영토의 갈라짐.

그저 걷다보면, 조금이라도 인식할 수 있을까

“전작인 ‘비포 애프터’는 거대한 사건 이후 그것을 개개인이 어떻게 읽어냈는가를 통해 발화했는데, 이번 작품은 그렇게 접근할 수 없었어요. 분단은 사건이 아니라 현실이잖아요. 분단의 현실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읽어내는 방향이 너무 많고 방대했죠. 어떤 길로 가야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전작들과 달리, 개인적 발화보다 여정 속에서의 감각을 더 나누고 싶었어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이것이 어떤 감각인지 공유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작품이 무대화되는 곳은 DMZ 현장이 아니라 극장이잖아요. 저희가 그곳에서 느낀 감각을 어떻게 해야 관객도 함께 체험할 수 있을지 고민했죠.”

워킹 홀리데이(walking holiday). 이경성 연출은 이번 신작을 통해 남북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걷는 행위로 들여다봤다. 분단된 현실 속에 살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그 현실을 예민하게 감각하지 못하는 우리의 몸을 깨우기 위한 작업이었다. 인간의 가장 본질적 신체 활동인 ‘걷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감각한 존재가 된 땅을 온 몸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의지였다. 이경성 연출은 그 모든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고 했다. 우리에게 분단은 ‘사건’이 아니라 ‘현실’ 이었기 때문이다.

“5월에 처음으로 DMZ를 걸었고, 이후 7월에 한 번, 9월에 한 번 더 걸었어요. 총 세 번, 봄 여름 가을에 걸은 셈이 됐네요. 본격적인 워크숍과 스터디, 그리고 작품을 무대화 하는 과정은 8월부터 했죠.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반영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연극 작업을 하면서 주로 사회적 문제에 무게를 싣고 주제를 정했는데, 그때마다 느낀 것은 모든 사건과 이슈가 결국 우리의 분단 상황과 맞닿아있다는 점이었어요.
 
그 현실이 머리로는 인식되지만 일상에서는 실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에 질문을 건넸죠. 인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워낙 방대한 문제라서 어디서부터 접근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곳을 먼저 알아가기로 했어요. DMZ를 걷기로 한 거죠. 차를 타고 그저 방문하듯 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더디게 해서 걷는다면, 그 풍경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게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렇게 무턱대고 걷기 시작한 거죠.”
 
▲ 연극 ‘워킹 홀리데이(walking holiday, 연출 이경성)’ 공연 장면.(뉴스컬처)     © 사진=두산아트센터

땅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는 흔적

‘DMZ를 걷자!’ 고 호기롭게 제안했지만, 막상 걷고자 하니 막막함이 앞섰다. 걷는 것만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걷는 휴식으로. 생각을 바꾸니 걷기의 여정이 여행으로 다가왔다.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렜다.

그럼에도 그곳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 할 경우도 많았고, 특히 판문점 방문은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통과했어야 할 많은 지점이 민간인 통제구역이었기에 해당 군부대에 협조를 요청해야 했다. 시도해보기 전에는 몰랐지만 막상 시도해보니 그곳은 정말 통제되고 막힌 땅이었다. 많은 절차와 과정을 거쳐 마침내 들어간 땅은 분단의 현실을 품은 곳이라기보다 자연 그 자체였다. 풀이 무성한, 인간의 자취가 없는 공간.

“막상 DMZ 부근을 걷다보니 분단의 현실을 느끼기 보다, ‘참 좋은 길이구나’ 하고 느끼게 됐어요. 살아있음을 감각하게 해주더라고요. 무엇보다 자연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연스럽지 않은 군사시설이 공존하는 게 이질적으로 다가왔죠.”

정확하게 느끼고 사유하고 싶었기에, 감각을 발바닥에 실어 꾹꾹 걸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분단적 상황의 흔적은 단순히 땅에만 남겨진 게 아니지 않을까. 이경성 연출은 “그 흔적은 땅을 넘어 개개인에게 모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아닐지라도 분단의 흔적은 모두에게 일부로 남아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걷기를 통해 발견한 것들이죠. 그것을 인정하고 발견해야, 이후에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분단의 흔적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에도 존재하는고 있잖아요. 그걸 인식하면 지금 우리의 현실을 실존적으로, 그리고 우리 세대와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연결점을 관객에게 전해주고 싶었죠.”
 
▲ 연극 ‘워킹 홀리데이(walking holiday, 연출 이경성)’ 공연 장면.(뉴스컬처)     © 사진=두산아트센터

분단의 현실, 피해갈 수 없는 문제

물론 그가 DMZ를 걸으며 느낀 것은 자연만이 아니었다. 과거의 상흔과 현실의 경제논리 사이의 묘한 아이러니도 그 중 하나였다. 특히 DMZ 민통선 마을에 부동산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고 했다.

“‘통일부동산’, 이런 이름을 가진 곳이 많더라고요. 최근 이곳의 땅값이 많이 올랐대요. 수요가 많기 때문이겠죠? 향후 부동산 가치가 높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 모습이 참 이상했어요. 멈춰있는 땅인데, 멈춰있는 땅이 아니구나 싶었고 누군가에 의해 여전히 움직이는 땅이구나 싶었거든요.”

이 모든 아이러니와 모순이 공존하는 이곳은 과연 어디일까. 그 공간을 품고 있는 대한민국은 과연 무엇일까. 대한민국이 속한 세계의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질문들은 이경성 연출이 작품을 만드는 데 중요한 지표로 작용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제게 새로운 화두가 시작된 것 같아요. 제 의지와 관계없이 분단국가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아티스트가 됐으니, 이 현실은 어떤 식으로든 무시할 수 없어요. 계속 점검하면서 나가려고 해요.”

평소 작품을 만들 때마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넨다고 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정말 궁금해 하는가’ 라는, 작품의 본질에 다가서는 물음이다.

“작업을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속는 순간이 생기거든요. 진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면, 형식적으로 다소 미미하더라도 충분히 이야기 할 만 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연극하기 자체가 마스터피스(masterpiece)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 내가 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죠. 때문에 초기의 질문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질문을 놓치지 않고 가려고 합니다.”


[프로필]
이름: 이경성
직업: 연출가,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 대표, 제3대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생년월일: 1983년 3월 27일
학력: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학사, 스피치드라마센트럴학교 석사
수상: 2017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2017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연극부문, 2016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 독일 베를린 떼아터트레펜 포럼 펠로우쉽 영희연극상, 2015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외 
경력: 연극 ‘비포 애프터’, ‘낯선 이웃들’, ‘삐끼ing’, ‘그녀를 말해요’,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 ‘연극의 연습-인물 편’, ‘서울연습-모델, 하우스’, ‘강남의 역사-우리들의 스펙, 태클 대서사시’, ‘당신의 소파를 옮겨 드립니다’.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 외 다수
 
(뉴스컬처=황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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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기자
現 뉴스컬처 객원기자
前 문화플러스 기자

프리랜서 작가 겸 자유기고가
"글은 연주요, 언어는 악기다"
 
2017/11/14 [09:58] ⓒ 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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