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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The Stage]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우리 시대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 오경택 연출
 
황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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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연출 오경택)’의 오경택 연출을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뉴스컬처)     ©이지은 기자
 
셰익스피어의 희비극으로 알려진 작품, 연극 ‘Measure for Measure’가 무대에 올랐다. 그동안 이 작품은 국내에서 수많은 번역된 제목으로 선보여진 바 있다. 오경택 연출이 이끄는 이번 프로덕션은 ‘준대로 받은대로’라는 제목을 택했다. 현대의 관객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시도였던 셈이다. 작품 안에서 ‘저항’의 의미를 더욱 새겨보고 싶었다는 오 연출을 직접 만나봤다.

현대의 관객과 만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요. 저는 20여 년 전 처음 읽었는데 그 때 작품을 본 후 ‘이제 뭐야’ 하고 황당해 했던 기억이 있어요. 펼쳐지는 상황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때문에 동시대 관객에게 잘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이 작품의 본질적 에센스를 잘 뽑아서 소개한다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보다 밀도감 있게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45% 분량을 압축한 후 윤색 과정에서 살을 붙였어요. 원본과 다른 방향의 각색을 시도했고, 동시에 작품 안에 내재된 권력, 정의, 성의 문제, 자비와 용서 등 여러 모티브를 나열했습니다. 더불어 마지막 이사벨라의 태도를 통해 여러 화두를 던졌고요.”

‘준대로 받은대로’는 빈을 통치하는 공작이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앤젤로에게 권력을 위임한 후 벌어지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도덕적 잣대와 종교적 신념이 강한 앤젤로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해묵은 법을 들이대며 연인을 임신하게 한 클로디오에게 사형이라는 과도한 형벌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클로디오는 자신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앤젤로에게 보내고, 이사벨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앤젤로는 자신이 벌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한다. 권력자의 이중성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다.
 
▲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연출 오경택)' 공연 장면.(뉴스컬처)     ©사진=국립극단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공연을 올리기 위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는 검열을 통과해야 했고, 두 번째는 귀족과 왕족의 지원을 받아야 했어요. 마지막으로는 당시의 다양한 관객층의 기호를 적중해야 했어요. 사실은 이 작품이 아주 대중적인 이야기인 거예요. 현재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많은 작품들이 당시의 대중극이었으니까요. 당시의 기호와 시선에 부합했던 작품들이었기에 지금까지 전해져 온 것이기도 하죠.
 
‘준대로 받은대로’는 얼핏 보면 공작의 현명함과 자비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외피를 입고 있을 뿐 사실 여러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문제 있는 거 아니야?’ 하는 질문을 교묘하고 날카롭게 던지고 있는 거죠. 희극이라는 장르가 그렇잖아요. 결국 주인을 골탕 먹이는 이야기거든요. 주인이라 함은, 당시의 위정자들이겠죠.”

작품에서 공작은 판을 짜고, 그 판을 해결하는 역할로 재등장한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인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작품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이 공작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결국은 그가 벌인 일임에도, 공작은 마치 그 사건을 해결하는 구원자처럼 등장한다. 그 모습은 보는 이에 따라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처럼 어이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 속에 작품이 존재하기에 이 이야기를 희극으로 보아야 하는지, 혹은 비극으로 보아야 하는지 지금까지 수많은 의견들이 오고가기도 했다.

“톤앤매너를 명확히 세우는 데 주안을 뒀습니다. 희극으로 보여줄지, 비극으로 보여줄지, 혹은 그 사이의 어떤 것을 보여줄지 결정을 내려야 했거든요. 저는 그 사이의 어떤 것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20년 전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아주 확실하게 각인된 장면은 이사벨라가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오빠에게 ‘그냥 죽어라’ 하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었어요. 상황은 매우 끔찍한데, 이사벨라의 그 대사가 왜 그렇게 묘하게 다가오나 싶더라고요. 많이 웃었거든요. 그런데 아주 웃겨서 웃는, 그런 웃음은 또 아닌 거죠.”

상황의 아이러니 강조한 시도
 
▲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연출 오경택)' 공연 장면.(뉴스컬처)     ©사진=국립극단

상황의 아이러니였다. 오경택 연출은 상황과 인물의 언어가 묘한 대립 가운데 존재하는 장면을 이같이 표현했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에는 상황적으로 아이러니에 놓이는 순간이 종종 있다. 때문에 관객들은 이 작품을 보면서 마냥 편하게 웃을 수만은 없다.

“등장인물이 처하는 딜레마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사벨라의 딜레마는 명확해요. 오빠의 목숨이냐, 자신의 순결이냐, 그 사이에 놓여있으니까요. 오빠 클로디오도 마찬가지에요. 동생의 순결을 지켜줄까, 내 목숨을 지킬까죠. 앤젤로 역시 자신의 도덕적 신념과 싸우고 있어요. 앤젤로의 경우 악인으로 비춰지지 않길 원했어요. 악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종교적 신념이 강한 그에게 어느 날 악마가 찾아온 거예요. 셰익스피어가 그를 악마로 다루고자 했다면 세 번의 독백을 넣지 않았을 거예요. 나약한 인간인 거죠. 사실 작품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공작이에요. 모든 문제를 저질러놓고, 해결사처럼 등장하잖아요.”

상황의 아이러니, 그 안의 인물들의 정서를 보여주기 위해 마지막 장면에서 이사벨라의 침묵으로 선택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오 연출은 “희극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비극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 모든 것이 가짜 희극이고, 우리의 현실은 과연 어떤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 장면에 바너딘이라는 죄수가 나오죠. 원작에서는 이 죄수를 풀어주고, 그 죄수가 세상에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이 환호합니다. 하지만 저희 프로덕션은 바너딘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고, 다시 옥으로 들어가는 삶을 택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공작이 다스리는 세상이 감옥 안에서의 삶보다 나을게 없다는 거죠. 그 세상 자체에 부조리와 불공평이 만연한데,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인물인 거예요. 이사벨라가 공작의 청혼을 받지 않는 것도, 그 순간 드라마가 정지하면서 무대가 돌아가고 인물들이 각자 입고 있던 옷을 벗는 것도, 모든 역할극이 이제야 끝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다 차갑게 이 작품이 관객에게 가 닿기를 원했다고나 할까요.”

기울어진 원형무대, 출발부터 부조리한 사회 표현
 
▲ 오경택 연출은 "출발부터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 기울어진 원형 무대로 '준대로 받은대로' 속 인물들의 왜곡된 상황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뉴스컬처)     ©이지은 기자

인물들의 이러한 상황은 기울어진 원형 무대를 통해 더욱 극대화 돼 보여진다. 이번 무대는 임일진 무대디자이너의 합류로 완성된 것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출발부터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시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회인 거죠. ‘기울어진 운동장’ 이라는 개념이 도출되기 까지, 원작이 제시하는 공평과 정의에 대해 생각했어요. 정의의 여신 디케가 저울을 들고 있지만 그 잣대가 정 중앙에 놓여있지 않다면 공평한 저울질은 불가능하잖아요. 중요한 건 이 잣대에인 거예요. 이 부분을 조정하는 권력자에 따라 세상이 기울어지는 거죠. 그 개념에서 출발해 임일진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지금의 무대가 나왔습니다.”

이번 작품은 그가 두 번째로 연출한 셰익스피어 희곡이다. 그동안 오 연출은 체홉의 여러 작품을 통해서도 이미 연출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체홉과 셰익스피어를 연출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한 가지로 이야기하는 힘들다”며 웃어보였다.

“두 작가 모두 인간이라는 이해하기도 풀어내기도 힘든 복잡한 우주를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면 팔수록 새로워요. 새로운 해석이 펼쳐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죠. 체홉은 캐릭터 해석을 어떻게 하든 작품의 의미가 달라지진 않아요. 반면 셰익스피어는 캐릭터 표현 방식에 따라 작품의 해석 방향이 매우 달라지죠. 그 점이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인간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대해서도 늘 감탄하게 되고요. 이처럼 인간을 깊이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고 싶어요. 결국 연극은 인간을 다루니까요.”


[프로필]
이름: 오경택
직업: 연출가
경력: 연극 ‘킬 미 나우’,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 ‘레드’, ‘햄릿’, ‘14인 체홉’, ‘벚꽃동산’, ‘한꺼번에 두 주인을’, ‘The Lover’, ‘갈매기’, ‘피아프’/ 뮤지컬 ‘레드북’, ‘투모로우 모닝’, ‘뿌리 깊은 나무.
 
(뉴스컬처=황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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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기자
現 뉴스컬처 객원기자
前 문화플러스 기자

프리랜서 작가 겸 자유기고가
"글은 연주요, 언어는 악기다"
 
2017/12/21 [10:21] ⓒ 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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