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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엘리펀트송’ 고영빈 “왜 나에게만? 한 남자의 두려움, 관객에게 전해졌으면”
환자 마이클과 심리 싸움을 벌이는 병원장 그린버그 역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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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엘리펀트송(연출 김지호)'에서 그린버그 역을 맡은 배우 고영빈을 서울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에서 만났다.(뉴스컬처)     ©박남희 기자
 
“내가 이 공연 안에서 어떤 존재로 있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다양한 작품을 만나왔지만 이같은 고민은 처음이었다. 한 소년이 극을 전반적으로 이끌고 있기에, 그 곁에서 관객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대본을 여러 번 정독하는 편이 아닌데도, 세 번이나 정독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도전 의식’이 가슴에 불을 댕겼고 출연을 결정했다. 그렇게 배우 고영빈은 배우로서 또 한 번 도전에 나섰다.
 
고영빈은 연극 ‘엘리펀트송(연출 김지호)’에서 병원장 그린버그를 연기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 로렌스가 실종되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환자 마이클과 심리 싸움을 벌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모든 키(Key)가 마이클 손에 있기에, 소년의 뜻대로 계속 흔들리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연습에 임하며 그는 “분명히 내가 할 이야기가 있을 거다”라는 생각을 되새겼다. 처음에는 찾지 못한 그린버그만의 스토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점점 ‘존재의 이유’에 집중하게 됐다. 사건을 마주하고 있는 그린버그의 마음에 집중하게 됐고, 그를 둘러싸고 있을 개인적인 상황들을 생각하니 점점 텍스트가 재미있어졌다.
 
“텍스트 안에서 느껴지는 부분은 물론 있었어요. 하지만 이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 이 사람을 완성하고 있는 모든 것. 그런 건 배우가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그린버그는 참 단순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했어요. 그린버그의 관계성을 찾고, 나 자신을 설득하고 그린버그의 심리를 만들어가는 게 힘들었어요.”
 
▲ 연극 ‘엘리펀트송(연출 김지호)’ 공연장면 중 마이클(왼쪽 박은석 분)이 그린버그(고영빈 분)의 화를 돋구고 있다.(뉴스컬처)     ©이슬기 기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 중 그린버그는 소년 마이클과의 대화에서 많은 감정 변화를 겪는다. 단순한 환자로만 생각했던 소년으로 인해 화를 내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협상하기도 한다. 아울러 마이클의 대화 속에는 그가 일전에 ‘병원 내 성추행 사건’을 마주한 적이 있는 CEO라는 것과 아내와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일까. 고영빈이 생각한 그린버그는 “두려운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경영자로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아내와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 뒤편에는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워싱턴DC를 가서 전시를 보려 했던 기억이 있어요. 정말 타운 전체가 문을 다 닫았더라고요. 그만큼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정말 큰 명절이고 웬만해서는 일을 하지 않죠. 그런 상황과 대화 내용을 비춰봤을 때 ‘그린버그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겠구나’ 생각하고 다가가기 시작했어요.
 
풀어야 할 숙제는 두 가지였어요. 병원과 아내. 마이클과의 대화가 단순히 이 일을 밝혀내겠다는 것으로만 그려지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지닌 개인적이고 복잡한 어떤 감정들이 함께하길 바랐어요. 그래서 냉정함을 잃어가는 거죠. 그는 ‘왜 나한테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하는 두려움이 남들보다 큰 사람이에요. 그래서 마이클이 자유롭게 된 이후의 감정도 이 사람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싶었어요.”
 
고영빈은 자신의 그린버그가 단순히 게임에서 진 패자로 보이지 않길 바랐다. 승자에게는 박수를, 패자에게는 위로를 건네는 것을 보면 그린버그는 패자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오만과 편견에 사로 잡힌 기득권층의 실수가 아닌 인간이 갖고 있는 아픔, 두려움 안에서 저질러진 실수, 다시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바닥으로 떨어진 인간의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 이 사람의 스토리가 관객에게 들리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 연극 ‘엘리펀트송(연출 김지호)’ 공연장면 중 그린버그(고영빈 분)가 마이클을 바라보고 있다.(뉴스컬처)     ©이슬기 기자
 
공연 개막 전까지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에 그는 잠을 못 이뤘다. 하지만 공연이 오르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고영빈은 “실로 오랜만에 연기하는 게 참 재밌다”는 감정을 느꼈다. 공연의 어떤 평이나 관객의 생각을 떠나 고영빈이라는 사람이 연기하고 있는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진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렇기에 연기에 있어 정답과 오답을 정해놓고 갈 때도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그 감정을 충분히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고영빈이라는 사람 자체가 이 작품 안에서 많이 릴렉스되고 있어요. 사실 정답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기분을 즐기는 것도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밀고 가다 보니 극 안에서는 이완이 돼서 편안한 마음으로 그린버그가 될 수 있었어요. 극 자체의 김장감을 찾아가면서 새롭게 생각하고 발견하는 부분도 있고요.”
 
세 마이클과의 호흡도 서로 다른 매력을 준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박은석, 정원영, 전성우의 마이클은 큰 흐름에서는 다른 점이 없으나, 배우가 달라 어느 정도 각각의 개성이 드러난다. 그는 “어떤 친구는 들어오자마자 궁금하고, 어떤 친구는 같이 있기 싫다가 푹 빠지게 될 때가 있고, 어떤 친구는 시종일관 궁금하지 않기도 하다”며 웃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마이클이 초콜렛을 달라고 말하는 장면을 꼽았다. 마이클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린버그의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이다. 그린버그에게는 ‘아, 이 아이가 그냥 아이였는데 내가 엄청난 범죄자를 심문하는 것처럼 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장면이다. 고영빈은 이 장면을 끝까지 내려간 절박함 속에서 찾은 빛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 고영빈은 그린버그와의 닮은 점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집요하게 시간을 두고 알아내는 것 정도”라고 말하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이 아이의 말장난을 다 받아주는 건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이 인물의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이 사람이 차선으로 모든 걸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해가 됐다”고 설명했다.(뉴스컬처)    ©박남희 기자
 
고영빈에게 ‘엘리펀트송’은 오랜만의 연극 작업이기에 더욱 힘들게 다가오기도 했다. 뮤지컬의 경우 음악과 앙상블 등의 도움을 받고, 그 안에서 감정을 극대화한다면 연극은 오롯이 한 캐릭터로 무대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믿을 것은 오로지 연기력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요즘은 정말 심적으로 편안하게 공연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행여 공연 중간에 뛰쳐나오고 싶어지지 않을까 우려도 했지만 공을 들인 만큼 오는 재미가 깊었다.
 
끝으로 그는 ‘엘리펀트송’의 가장 큰 메시지는 ‘사랑’에 있다고 강조했다. 결말과 상관없이 예쁜 작품이고,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는 극이지만 무엇보다 사람이란 존재는 사랑이 없으면 살 수가 없도록 태어난다는 걸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쉽게 말하면서 살아가고 풍요롭게 쓰잖아요. 그런데 그게 진실이냐 아니냐에 따라 어느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죽음까지 갈 수도 있다는 걸 이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됐어요. 그 말이 갖는 참뜻을 깊게 생각하고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관객 분들에게도 사랑의 책임, 방법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로,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작품으로 찾아가길 바랍니다.”
 
 
[프로필]
이름: 고영빈
생년월일: 1973년 8월 18일
직업: 배우
학력: 중앙대학교 전기공학과
출연작: 뮤지컬 ‘신라의 달밤’, ‘포기와 베스’, ‘토미’, ‘카르멘시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그리스’, ‘아가씨와 건달들’, ‘페퍼민트’, ‘코러스 라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캣츠’, ‘바람의 나라’, ‘클로저 댄 에버’, ‘벽을 뚫는 남자’, ‘햄릿 시즌2’, ‘컴퍼니’, ‘대장금’, ‘금발이 너무해’,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라카지’, ‘광화문 연가’, ‘마마 돈 크라이’, ‘인당수 사랑가’, ‘미드나잇 블루’, ‘프리실라’ 외. / 연극 ‘클로져’, ‘레인 맨’, ‘엘리펀트송’ 외.
 
(뉴스컬처=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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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뉴스컬처/뉴스제작본부
news@newsculture.tv
 
2016/05/17 [13:14] ⓒ 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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