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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The Stage] 힘을 빼고 마음을 비운 채, 그저 클라우디오로
연극 ‘맨끝 줄 소년’으로 다시 돌아온 전박찬 배우
 
황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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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맨 끝줄 소년(연출 김동현)’에서 클라우디오 역을 맡은 배우 전박찬을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뉴스컬처)     ©박남희 기자

공연 전 진행된 인터뷰. 그는 인터뷰 장소에 먼저 나와 있었다. 정적으로, 고요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그는 무언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빼꼼 들여다보니 형광펜이 죽죽 그어진 대본이었다. 그야말로 틈만 나면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 그였다.

전박찬 배우. ‘에쿠우스’의 알런으로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그는 2년 전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로 다시 한 번 자신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금 그는 또 한 번 클라우디오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2년 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힘을 빼고 마음을 비웠다. 그저 한 인물, 클라우디오가 되고 싶기에.

■ 2년 전 클라우디오, 부끄러움만 가득하더라

지난 해 10월,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 이후 오랜만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약 5개월 만에 관객과 다시 마주하는 전박찬 배우.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기에 얼굴을 볼 수 없었는지 묻자 “여행도 다니고 토마토도 말리고, 향초도 만들며 지냈다”고 이야기했다.

“항상 요리가 최고의 힐링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료를 다듬는 소리, 음식이 익어가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를 듣는 게 좋아요. 특히 상대방이 제 요리를 맛있게 먹어줄 때, 그 모습을 보면 저절로 모든 게 치유될 정도죠. 그동안 공연으로 바빠서 요리를 많이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요리를 다시 할 수 있었어요. 향초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초를 녹이고 오일을 붓고, 심지를 붙여서 굳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방 안에 향이 가득해지는데 그 때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더라고요. 만든 초를 선물하면 상대방이 굉장히 좋아해요. 그 모습 보는 것도 큰 기쁨이던데요.”

무대에서는 주로 굵직한 캐릭터로 관객과 마주했지만, 사실 그는 삶의 작은 것들을 소소하게 즐기는 일에 애착을 갖는다. 큰 사건의 발생으로 삶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작은 일상이 모여 삶이 쌓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클라우디오 역시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맨 끝 줄에 앉아 반 친구들을, 교사 헤르만을, 더 나아가 헤르만의 마음과 생각까지 보는 클라우디오. 그의 글은 결코 큰 사건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 표정 하나, 대화 하나, 사물 하나 등 지극히 사소한 일상으로 구축 돼 있다. 그렇기에 교사 헤르만이 그의 글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었을까.

클라우디오로 다시 관객을 만나는 전박찬 배우는 2년 전 지금을 회상하며 “부끄러운 나나들” 이라고 했다. 그동안 작품에 임할 때마다, 그 작품들이 재공연 될 때마다 그야말로 신나게 최선을 다했는데, 막상 돌아보니 자신의 욕심으로 가득 채워진 공연이 아니었나 싶었다고 했다.

“그 때 제 안에 뭔가 꽉 차 있었어요. 어떤 순간에는 제어가 힘들 정도로요. 어떤 장면은 제 안에서 일어나는 떨림이 아주 컸죠. 하지만 클라우디오를 그렇게 접근하다보니 관객의 몫이 없어지더라고요. 관객이 상상해야 할 부분을 제가 다 가져간 게 아닌가 싶었어요. 제가 모든 걸 느껴버리고, 모든 걸 점유한 게 아닌가 싶었죠. 그런 점에서 지난 공연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요.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정말 신나게 했고 재미있었거든요. 관객 분들이 잘 봐주셨죠. 그래도, 후회는 없지만,(웃음) 지금은 두 살 더 먹었잖아요. 그 때는 34세의 전박찬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 지금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렇다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뭘까.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다시 이 공연을 하게 된 게 무척 감사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반면 생각도 많았다”고 했다. 아무리 이전 작품을 그대로 가져온다고 해도, 2년 후에 만드는 작품이 결코 이전과 같은 작품일 수 없었다. 그 때부터 전박찬 배우는 “그렇다면 과연 내가 클라우디오를 하는 게 옳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손원정 선생님이 리메이크 연출을 맡으셨기에 제가 더 의지할 수 있었어요. 스무 살 때부터 뵀던 분이에요. 학교에도 같이 있었고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도 드라마터그를 해주셨죠. 코끼리만보에서 같은 식구로도 있었고요. 게다가 초연 배우들, 데뷔 공연을 같이 한 미화누나가 함께하니까 마음이 든든했죠. 소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제가 할 일은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요. 제가 다 점유하지 않는, 관객에게 다시 되돌려 드리는 방식으로 말이죠.”
 
▲ 연극 ‘맨 끝줄 소년(연출 김동현)’에서 클라우디오 역을 맡은 배우 전박찬.(뉴스컬처)     ©박남희 기자


■ 클라우디오의 글쓰기, 그 순수함에 대하여

연극 ‘맨 끝줄 소년’을 이야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것은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인 더 하우스(In the House)’ 다. 개인적으로는 희곡 속 클라우디오로부터 결핍을 느꼈다면, 영화 속 클라우디오에게서는 욕망을 느꼈다. 이에 대해 묻자 전박찬 배우는 “2년 전에도 영화를 못봤다고 말했는데, 지금까지도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인 더 하우스’를 할 때가 있어요. 유혹이 크지만 꾹 참고 채널을 돌리죠. 보면 안 될 것 같아서요.(웃음) 언뜻 한 장면을 보긴 했는데 배우가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욕망이 강하게 보이던걸요. 사실 2년 전 이 작품을 할 때 저는 클라우디오의 결핍에 초점을 맞췄어요. 헌데 거기에 너무 집중했죠. 때문인지 그 결핍이 표출되는 과정에서 다소 과해 보이기도 하고, 더 못 돼 보이기도 한 것 같아요. 지금은 결핍과 욕망 이 두 가지 중 선택하기보다 클라우디오의 순수한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어요. 클라우디오는 처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그저 헤르만 선생님이 시키는 작문을 했을 뿐이죠.”

순수한 행동의 반복이 집념과 욕망으로 발전하는 것인지는, 글쎄다.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오해는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클라우디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자신으로 존재한 것 뿐일 수 있다. 맨 끝줄에 앉아 모든 것을 보지만 어떤 것도 정의내리지 않았을 수 있다. 오히려 그런 클라우디오를 사람들이 정의하고 규정한 것은 아닐까.

“클라우디오가 모든 욕망을 크게 가진 존재였다, 이런 생각이 제 안에 있었나봐요. 지난 공연에서요. 어쩌면 결핍은 욕망과 같은 얼굴이잖아요. 때문에 모든 것들이 좀 과하게 나온 게 아닌가 싶었어요. 지금은 그것들을 다 비우려고 노력하고 있죠.”

새로운 클라우디오를 준비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비우고 있다. 2년 전에는 양 손에 단검도 쥐고 수류탄도 쥐었는데 모든 걸 버리고 나니 결국 아무 것도 쥐지 않은 자신을 발견했다. 헌데 주위를 둘러보니 검 하나가 있었다. 결정적인, 그러나 이전과 비교하면 너무나 작고 초라한 그저 검 하나.

“그 검을 제 손에 쥐어준 분이 손 연출님이세요. 하지만 사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어제 낮까지도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까지 연습실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찾기 위해 긴 시간을 싸워왔는데 런을 돌수록 연습실에 들어갈 자격이 없어지는 것 같았죠. 부끄러웠어요. 안되겠다 싶어서 하루는 일찍 도착해 혼자 클라우디오와 만났어요. 대사를 하며 동선을 밟다보니 손에 쥔 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점점 확신이 서니까 더 이상 수류탄은 필요 없겠구나 싶었죠.”

■ ‘선생님’이었다가 ‘연출님’이었고, 다시 ‘선생님’이 된 그 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이 작품은 故 김동현 연출의 유작이다. 그리고 전박찬 배우는 김동현 연출의 극단 코끼리만보에서 활동하며 성장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가 故 김 연출의 아끼고 아낀 배우라는 건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클라우디오에 그가 캐스팅 된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김동현 연출이 왜 그를 클라우디오로 낙점했는지. 그 이유를 말해줬는지.

“한 마디도 없으셨어요. 아. 딱 한 마디 해주셨어요. 너 11월에 ‘맨 끝줄 소년’ 해야 해. 이게 다예요. 심지어 제가 클라우디오인 줄도 몰랐어요. 해야 할 이유보다, 해야 할 것들만 말씀해 주셨죠.(웃음)”

그가 故 김동현 연출을 처음 만난 때는 2007년이다. 그로부터 딱 10년 동안 전박찬 배우는 김 연출과 함께 했다. “많은 작품을 했어요. 관객을 만난 작품 외에도 저희끼리의 스터디도 있었고 워크샵 공연도 있었죠. 재공연도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김동현 선생님은 모든 재공연을 초연과 똑같이 한 적이 한 번도 없으세요. 틀만 바꾼 게 아니라 섬세한 지점까지 모두 바꾸셨죠. 이번 작품을 준비할 때 손 연출님이 제게 새로운 것들을 요구하고 이야기해주셨는데, 김동현 선생님도 지금의 손 연출님처럼 말씀하셨을 것 같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손원정 연출이 전박찬 배우에게 한 이야기는 간단했다. 그리고 마음을 울렸다. “2년 전에는 네가 그걸 했으니, 이번에는 이걸 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듣고 전박찬 배우는 김동현 연출을 떠올렸다.

“맨 처음, 선생님은 제게 늘 선생님이셨어요. 그런데 하루는 그러시는 거예요. 이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마. 그때부터 연출님이라고 불렀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또 한 번 그러셨어요. 이제 형님이라고 불러. 그 때는 제가 아니요, 라고 했어요. 그렇게 부를 수 없습니다, 라고. 속으로는 무척 기뻤지만요. 2015년 즈음이었는데 연출님과 제가 아주 가까워진 순간이었어요. 그 이후로도 계속 연출님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솔직히 좀 후회돼요. 형님이라고 한 번 불러볼 걸 싶더라고요. 다시는 그렇게 부를 기회가 없잖아요. 지금은 제 마음 속에 가장 큰 스승으로 남아계세요.”

가장 큰 스승으로부터 받은 제일의 가르침은 ‘즐겁게 연극하는 것’이었다. 연극의 과정이 언제나 즐거울 수만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는 늘 즐겁게 연극하는 스승을 통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정말 즐겁게 연극 하셨어요. 연습 과정 중에 툭툭 던지신 농담들, 그걸 들을 수 없다는 게 가장 그리워요. 선생님 손이 차가운데 한 번은 제 손을 한참 잡고 이야기하시던 순간이 있어요. 닿는 손은 차가웠지만 따뜻하게 느껴졌죠. 그 감각이 고스란히 각인돼 있어요. 저도 선생님을 따라서 앞으로 즐겁게 작업하고 싶어요. 물론 아직 저는 많이 부족하지만요.”
 
▲ 연극 ‘맨 끝줄 소년(연출 김동현)’ 공연 장면 중(뉴스컬처)


[프로필]
이름: 전박찬
직업: 배우
경력: ‘썬샤인의 전사들’, ‘게임’, ‘떠도는 땅’, ‘맨 끝줄 소년’, ‘생각나는 사람’, ‘디스 디스토피아’, ‘공포’, ‘에쿠우스’, ‘그 샘에 고인 말’, ‘천국으로 가는 길’, ‘말들의 무덤’, ‘여기는 당연히, 극장’, ‘피리부는 사나이’, ‘그을린 사랑’, ‘우리말고 또 누가 우리와 같은 말을 했을까’, ‘해맞이’, ‘매일 만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사랑했었다’ 외 다수

 (뉴스컬처=황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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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기자
現 뉴스컬처 객원기자
前 문화플러스 기자

프리랜서 작가 겸 자유기고가
"글은 연주요, 언어는 악기다"
 
2017/04/04 [12:14] ⓒ 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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