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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재개봉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예수 최후의 12시간 따라가는 ‘고난의 길’
성경 철저히 고증해 극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표현
 
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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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 깁슨 감독의 2004년 작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스틸컷.(뉴스컬처)     © 사진=더홀릭컴퍼니

보통 종교영화가 개봉하면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무겁고 진중한 영화는 패스’ 혹은 ‘재미로 보는 영화 아니니까 봐야지’ 정도. 종교영화 중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극히 드문 이유가 드러나는 반응들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20세기 최고의 종교영화로 꼽히는 ‘벤허(감독 윌리엄 와일러, 1959년)’는 종교를 소재로 했지만 당시 TV에서 경험할 수 없는 스크린 특유의 스펙터클함-지금도 회자되는 전차경주씬-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2004년 개봉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그 예외의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배우 출신 멜 깁슨 감독이 사비를 털어 제작, 연출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북미 박스오피스 3주간 1위, 북미 역대 R등급 영화 1위를 기록했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 역대 종교영화 흥행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타협하지 않는 리얼리즘으로 묵직한 감동을 전하며 종교영화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오늘(10일) 재개봉한다.
 
▲ 멜 깁슨 감독의 2004년 작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스틸컷.(뉴스컬처)     © 사진=더홀릭컴퍼니

영화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제임스 카비젤 분)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카메라는 롱샷에서 천천히 예수에게 다가가며 빛이 없는 어둠의 시간 속, 곧 닥칠 고난을 알기에 지극히 두려워하는 예수의 인간적인 면을 포착해낸다. 함께 있던 제자들을 책망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불안에 잠식당한 한 여린 인간을 묘사한 것이다. 다시 홀로 기도하는 중에 나타난 사탄이 뱀으로 변형돼 예수를 유혹할 때, 발뒤꿈치를 들어 뱀의 머리를 밟는 장면에서는 유대인들의 메시아로서 예언을 성취하는 현현한 신의 모습을 카메라는 잡아낸다.

이후 영화는 ‘슬픔의 길’ 혹은 ‘고난의 길’로 불리는 ‘Via Dolorosa’의 행적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재현한다. ‘Via Dolorosa’는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며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곳까지 이르는 길을 의미한다. 이 길은 14세기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확정되었으며, 각각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는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성경을 철저히 고증해 각 지점들을 극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표현해낸다.

▲ 멜 깁슨 감독의 2004년 작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스틸컷.(뉴스컬처)     © 사진=더홀릭컴퍼니

카메라는 ‘Via Dolorosa’의 전 과정을 담담하지만 회피하지 않는 시선으로 따라간다. 빌라도 총독이 재판을 한 후 매를 맞고 채찍질 당하는 제1지점,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쓰러진 지점인 제3, 7, 9지점, 성 베로니카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 주고 그 손수건에 예수의 초상이 새겨졌다는 제6지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제11지점과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제13지점, 중간 중간 삽입되는 가시면류관, 못, 망치 인서트 컷까지… 성경 구절들을 고스란히 가져온 듯한 컷들의 연속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의 모습도 명화의 한 장면이요, 예수를 품에 안은 마리아의 모습은 피에타상을 연상시킨다.

예수가 매를 맞고 채찍에 살가죽이 찢겨 나가는 장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는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씬에서만큼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별명 ‘헤모글로빈의 시인’이 멜 깁슨 감독의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12시간 만에 사람이 죽을 수가 없다고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12시간을 버틴 예수가 용하게 느껴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 멜 깁슨 감독의 2004년 작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스틸컷.(뉴스컬처)     ©사진=더홀릭컴퍼니
 
한 가지 더, 가톨릭에서 성물로 치는 몇 상징적 물건들이 있다. 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성배, 예수의 얼굴이 찍힌 성화,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롱기누스의 창…. 철저한 성경의 고증에 더불어 가끔씩 나오는 역사와 신화의 경계에 선 성물들을 보고 있자면, 이 영화가 원작소설을 읽고 그 사회적 논쟁을 아는 이들에게 영화 읽는 재미를 던져 주기도 하는 웰메이드작이란 생각도 든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관객들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만든다. 시종일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지만,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놓치 않는 긴장감에는 멜 깁슨 감독의 내공이 단단히 한몫 했다. ‘매드 맥스’ 시리즈, ‘리썰 웨폰’ 시리즈, ‘햄릿’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의 입지를 다진 멜 깁슨 감독은 1995년 직접 메가폰을 잡은 ‘브레이브 하트’로 제68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며 감독으로서의 본격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 멜 깁슨 감독의 2004년 작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스틸컷.(뉴스컬처)     © 사진=더홀릭컴퍼니

멜 깁슨 감독이 무려 15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이 영화제작의 꿈을 실현하기까지는 험난한 길의 연속이었다. 멜 깁슨 감독은 반유대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고, 예수 역을 맡은 제임스 카비젤은 어깨가 탈골되고 십자가에 매달린 채 번개를 맞았으며, 의사로부터 심장병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일부 언론은 폭력적인 영화라고 평하기도 했고, 쿠웨이트, 바레인 같은 나라에서는 상영이 금지됐다. 영화를 본 브라질의 한 목사는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고 급성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그의 죽음이 영화와 무관하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지만 논란은 컸다). 
 
프리프로덕션부터 배급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었지만 멜 깁슨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사멸의 위기에 놓인 고대어인 아람어를 부활시켜 배우들이 영화에서 말하게 했고, 철저한 고증으로 세트, 의상을 준비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그는 이 영화를 찍으며 ‘깊은’ 신앙의 단계를 경험했다고 알려졌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오프닝 인서트로 차용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서 53장)” B.C. 700년 전에 기록된 이 성경구절은 멜 깁슨 감독의 자전적인 고백이기도 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한 장면, 한 장면이 한 폭의 명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전적으로 촬영감독 칼렙 디샤넬 덕분이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사실적으로 살렸던 이탈리아의 화가 미켈란젤로 카라바조(1573~1610)의 작품처럼 칼렙 디샤넬 촬영감독은 빛의 효과를 이용한 촬영방식으로 사실적인 화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밀페된 공간, 어두운 밤에 촬영을 했고, 다양한 색 조명을 사용해 유려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주목했다. 카라바조 작품의 명암과 현실적이고 잔인한 묘사는 그렇게 스크린에 고스란히 재현됐다.

영화 속에서 예수 역을 맡은 배우 제임스 카비젤은 영화 내내 자신이 지은 죄를 떠올렸고, 자신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를 보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영화와 삶의 경계가 모호해질 무렵, 때때로 혼란에 빠져 영화를 포기하려는 멜 깁슨 감독에게 제임스 카비젤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내 이름은 제이스 카비젤, J.C.이고 올해 33살입니다(예수의 이름 Jesus Christ 약자과 같고 공생애를 마감한 나이와 동일하다는 의미).” 멜 깁슨 감독에게는 더 없는 압박이자 동력이었을 거다.

▲ 멜 깁슨 감독의 2004년 작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스틸컷.(뉴스컬처)     © 사진=더홀릭컴퍼니

이 영화를 통해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고백한 제임스 카비젤의 몇 안 되는 예수의 대사 중에 이 영화의 정수가 녹아있다. “원수를 미워하기는 쉽다. 내가 이르노니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이 있으리오? 내가 남기는 계명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기독교 신자들에게 이번 주는 종려주일로 시작하는 고난주간이다. 갓 젖을 뗀 어린 나귀의 등을 타고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가 제자 유다의 배신으로 은 30냥에 팔려 체포당하고, 매를 맞고, 재판을 하고, 채찍질을 당해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의 일주일이다. 그리스도 고난의 일주일이 지나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오는 16일은 죽음에서 돌아온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이다.
 
▲ 멜 깁슨 감독의 2004년 작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스틸컷.(뉴스컬처)     © 사진=더홀릭컴퍼니

부활절은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성탄절만큼 의미가 있는 날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당신을 위해 채찍질당하고 십자가에 죽은 예수의 부활에 떳떳하게 동참할 수 있는가를 극사실주의적인 묘사로 묻고 있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만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던 예수의 외침의 무게가 다시금 무겁게 들리는 이유다. 그 십자가는 다름 아닌 사랑의 무게다. 신을 향한 사랑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 멜 깁슨 감독은 이 영화는 적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용기와 희생, 인내와 사랑… 요즘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영화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부활절을 앞두고 유신론자에게도 무신론자에게도 예외일 수 없는 예수의 가르침 한 구절이 마음에 울린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 없어지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인간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부활을 기리는 오늘이 바로 “보라, 죽음을 이기었노라”고 선언한 예수의 고백이 성취된 것은 아닐까. 영화는 묻고 있다. 2004년에도 그리고 2017년에도 당신은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의 부활을 기꺼이 기뻐할 수 있냐고. 오늘(10일) 재개봉.
 
 
(뉴스컬처=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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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민 기자
뉴스컬처/편집장
news@newsculture.tv
 
2017/04/10 [10:12] ⓒ 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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